집단 선택

자연선택의 단위가 개체군 수준이라고 보는 견해.

도킨스의 비판

그룹선택설에 대한 개체 선택론자의 답은 간단히 말해서 다음과 같다. 이타주의자의 집단 중에는 어떤 희생도 감수하기를 거부하는 소수파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다른 이타주의자를 이용하려고 하는 이런 이기적인 반역자가 한 개체라도 있으면 - 정의에 의하면 - 그 개체는 아마도 다른 갸체보다 생존의 기회와 새끼를 낳는 기회가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 새끼는 각각 이기적인 특성을 이어받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또한 여러 세대의 자연선택을 거치고 나면, 이 ‘이타적 집단’에는 이기적인 개체가 만연해 이기적 집단과 구별이 어렵게 될 것이다. …

아마도 그룹선택설이 큰 매력을 갖는 이유는 그것이 대부분 우리가 갖고 있는 도덕적 이상이나 정치적 이상과 조화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으로서 우리는 종종 이기적으로 행동하지만 이상적인 면에서는 타인의 이익을 우선하는 사람을 존경하고 칭찬한다. 그러나 우리가 ‘타인’이란 말을 어느 범위까지 설정해야 하는가에 관해서는 다소 혼란이 있다. 흔히 집단 내의 이타주의는 집단간의 이기주의를 동반할 때가 많다. …

만약 자연선택이 같은 종 내의 집단 간이나 이종간에서 일어난다면, 왜 더 큰 집단간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종은 속으로 집단을 이루고 속은 목으로 되어 묶이고 목은 강에 속한다. 사자와 영양은 둘 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포유강의 일원이다. 그렇다면 ‘사자는 포유강의 이익을 위해’ 영양을 죽이지 않으리란 법이 없지 않은가? 분명히 포유강의 멸종을 방지하기 위해서 사자는 영양 대신에 새나 파충류를 사냥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척추 동물문 전체를 존속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p31-35, The selfish gene

매트 리들리의 비판

염색체와 배아와 개미 군집가 가르쳐준 교훈을 되새겨보자. 이처럼 긴밀한 친족 집단에도 이기적 반란의 위협은 상존한다. 때문에 염색체에서는 추첨, 배아에서는 생식 세포계 격리, 일개미에서는 생식 능력의 제거와 같은 정교한 메커니즘을 통해 반란은 억제된다. 하물며 집단을 구성하는 개체들이 혈연적으로 무관하고 개체들이 한 집단에서 다른 집단으로 옮겨다니며 저마다 재생산 능력을 갖고 있는 경우에 이기적 반란을 억제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바로 이 논리에 따라 집단 선택론의 허약한 전제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집단 선택이이 개체 선택의 효과를 압도할 수 있으려면, 집단이 개체만큼 짧은 세대를 가져야 하고 아주 공정하게 동종 교배되어야 하며, 게다가 집단 간의 이동이 거의 없고 집단의 도태율이 개체의 도태율만큼 높다는 조건이 모두 동시에 충족되어야만 한다. 어떤 종족 또는 어떤 집단이 아무리 대의를 내세우면서 이기적 욕망의 절제를 시도한다고 해도 이들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집단 내에는 이기주의가 독감처럼 번질 것이다. 개체는 집단의 절제를 틈타 야심을 충족시킬 기회를 끊임없이 노린다. —p249-250, The origins of virt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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